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츠 샬 (문단 편집) == 서부전선 == 같은 해 12월에 프란츠 샬은 본국으로 돌아가 제국 수도인 [[베를린]]의 북부 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JG 7|제7전투항공단]]에 배속되었다. 당시 [[발터 노보트니]] 소령이 지휘관을 맡고 있던 JG 7은 제트 전투기 [[Me 262]]를 갖춘 항공 사상 첫 실전 제트전투기 부대로 [[오라니엔부르크]]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 부대에서 샬 중위는 10월 7일에 [[마그데부르크]] 상공에서 미군의 [[B-24]]를 Me 262로 잡아내는 것을 스타트로 14대의 전과를 보탰는데, 이것은 제트 에이스로서는 3번째로 높은 대기록이다. 10월 28일에는 쾨스펠트(Coesfeld) 상공에서 [[폭격기]] 편대를 호위하던 [[P-51]]을 격추시킨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어보였다. 11월 6일에 또다시 1대의 머스탱을 잡은 그는 이틀 후에 오스나브뤼크(Osnabrück)를 공습하던 폭격기들을 엄호하던 미 육군 제359전투비행단(359 FG) 소속의 머스탱 대편대를 맞닥뜨렸고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3대나 격추시키는 쾌거를 거둔다. 안그래도 뛰어난 에이스였던 프란츠 샬 중위가 엄청난 고속에다 뛰어난 상승률을 자랑하던 Me 262를 타게 되자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쟁에서 지고 있더라도 개인의 전투에서는 승승장구하던 프란츠 샬이었지만, 계속 죽음을 뿌리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1945년]] 4월 10일, 자신의 133번째 전과이자 최후의 격추 기록이 된 P-51 한 대를 잡은 그는 위에서 급강하하며 덮친 또다른 적기에게 엔진이 피탄되었고, 할 수 없이 파르킴(Parchim) 비행장으로 내려가 비상 착륙을 시도했다. 활주로에 터치다운한 그의 탑승기는 무사히 택싱하는가 했더니 곧 폭탄이 파헤쳐놓은 화구로 빠져버렸고 그가 탄 Me 262는 그 자리에서 폭발해버려 프란츠 샬은 즉사하고 말았다. 동부전선에서 116대를 격파하고 서부전선에서 중폭격기 6대를 포함해 17대를 잡아낸 그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곡엽기사 철십자훈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으나, 전황이 악화되며 훈격에 관한 행정 처리가 늦어지면서 프란츠 샬은 결국 기사철십자훈장에 머물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